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이 거룩한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서 주님의 크신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우리가 머무는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소유와 계산이 가득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자기 형과 유산을 나누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그 목소리 속에는 내 몫이 줄어들까 두려워하는 마음,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져야 안심할 수 있는 인간의 서글픈 계산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향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향해 단호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말씀을 던지십니다. 사람의 생명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곳간을 크게 지어 쌓아두고 스스로에게 만족하려는 부자에게 밤사이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하느님의 모습은, 우리가 이 땅에서 움켜쥐려 하는 것들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서에서 전하는 말씀은 이 세상의 계산법을 완전히 뒤집어놓습니다.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을 때, 세상의 지배를 받으며 방황하던 그 때에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하늘에 함께 앉히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어떤 공로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솜씨로,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사업을 하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움켜쥐는 삶이 아니라, 거저 받은 그 은총을 나누며 살아가는 삶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길입니다.
이 말씀 앞에 설 때, 우리 15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주님의 품으로 돌아간 우리 벤자민 보, 우리 벤이 떠올릅니다. 벤은 참으로 특별한 아이였습니다. 벤의 삶은 무엇을 더 많이 쌓아두고 움켜쥐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세상의 저울에 달아보지 않았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벤의 마음속에는 이웃을 향한 놀라운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삼촌이 큰 아픔을 겪을 때, 벤은 자신의 전부였던 저금통을 기꺼이 내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저금통을 깨거나 건네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그 마음의 고백 하나가 중요합니다. 나 혼자 살겠다고 곳간을 늘리는 부자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사랑하는 이의 아픔과 바꾸고 싶어 했던 소년. 그 순수한 제공의 마음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보화가 아니었을까요.
벤은 이 세상에서 비행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공항에서 거대한 비행기가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직접 만든 가상의 회사인 ‘콘 짐 에어라인’ 이야기를 수줍게 꺼내놓을 때면 벤의 얼굴에는 온통 환한 미소가 번지곤 했습니다. 벤이 좋아했던 것은 단순히 기계의 철판이나 엔진 소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비행기가 품고 있는 더 넓은 하늘, 더 높은 곳을 향한 동경이었습니다. 아빠가 들려주는 사소한 이야기 속에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던 벤은, 이 세상의 딱딱한 계산법 대신 사랑이라는 날개를 달고 사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벤이 떠난 지 어느덧 넉 달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부모님과 동생 라이언, 그리고 벤을 사랑했던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는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허전함과 무거운 침묵이 밀려들 것입니다. 빈 방에 놓인 물건들, 문득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 앞에서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마음 한구석에 ‘내가 더 무언가를 해줄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때 내가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자책의 멍에를 쥐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그 무거운 질문을 조용히 거두어가십니다. 질병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벤의 아픔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며, 여러분이 쏟았던 그 극진한 사랑과 정성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이유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의 눈물과 기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벤이 아빠의 꿈속에 나타나 ‘테스트는 다 통과했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던 그 기억을 떠올리십시오. 벤은 지금 하느님의 품 안에서 모든 고통과 얽매임을 벗어던지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하늘보다 훨씬 더 찬란한 영원한 빛 속에서 자유롭게 날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스스로를 향한 가혹한 질책을 주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으십시오.
라이언, 형 벤을 기억하니? 형이 너와 함께 장난을 치고, 여행지에서 나란히 발걸음을 맞추던 그 모든 시간은 너의 마음에 심어진 소중한 사랑의 씨앗이야. 형은 지금도 네가 씩씩하게 웃으며 엄마 아빠의 곁을 지키는 모습을 보며 하늘에서 흐뭇하게 미소 지을 거야. 형이 꿈꾸던 그 넓은 하늘을, 이제는 네가 형의 눈이 되어 더 당당하게 바라보렴. 형은 네가 아빠와 나누는 그 다정한 대화 속에, 네가 짓는 그 미소 속에 언제나 함께 머물고 있단다.
알란 님, 타오 님. 벤은 여러분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벤이 여러분의 삶에 남긴 그 따뜻한 온기와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 벤이 좋아하던 비행기 사진이나 환하게 웃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십시오.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상처 입은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줄 것입니다. 벤의 이름으로 세상의 목마른 이들에게 건네지는 작은 나눔의 손길들처럼, 벤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세상에서 생명수의 물결로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성당을 나서며 이 한 가지만 마음속에 품고 가십시오. 우리는 세상의 재산이나 썩어 없어질 곳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품었던 그 순수한 마음과 환한 미소를 기억하며, 우리도 주님 안에서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고 굳건히 살아가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다오. 주님의 평화가 여기 남겨진 모든 이들과 영원히 함께하기를 빕니다.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전능하신 하느님, 오늘 이 거룩한 시간 속에서 저희와 함께하신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남겨진 모든 이들의 걸음을 굽어보시어 날마다 평화와 희망으로 채워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