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의 마음과 가정에 언제나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종종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 내 안에 남은 힘이 얼마나 되는지 가만히 손가락을 꼽아보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불쑥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주러 왔다고 하시는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예리한 비수처럼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잔인한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미지근한 타협과 거짓된 평안을 태워버리고, 진실한 사랑의 불꽃을 지피시려는 거룩한 열정입니다. 그 불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안의 가장 깊은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서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드린 기도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믿음으로 살아가시고, 여러분이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며 기초를 세우기를 빕니다.” 바오로가 바라본 것은 인간의 계산이나 세상의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넓고 길고 높고 깊은 사랑의 지형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마침내 하느님의 그 가득한 충만함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의 기복 속에서도, 이 사랑의 지형 안에서 비로소 우리의 영혼은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비행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공항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항공기들이 가벼운 몸짓으로 하늘을 박차고 오르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아이의 눈동자는 별빛처럼 빛났습니다. 벤자민 보, 우리 벤은 머릿속에 수많은 비행의 경로와 공학의 원리들을 품고 있던 맑은 영혼이었습니다. 벤은 아빠의 목소리를 사랑했고, 아빠가 건네는 사소한 이야기 속에서도 따뜻한 진심을 귀담아듣는 아이였습니다. 아빠가 들려주는 세상의 이치 속에서 벤은 자신이 타야 할 사랑의 항로를 조용히 배워나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삶이란 때로는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급류를 만나기도 합니다. 벤이 떠난 지 어느덧 넉 달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부모님과 동생 라이언, 그리고 벤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는 때때로 거센 파도가 밀려옵니다. 문득 벤이 남긴 흔적들을 마주할 때, 혹은 벤이 좋아하던 그 비행기 소리를 들을 때, 마음 한구석에서 솟구치는 서글픈 자책의 목소리를 들으실지도 모릅니다. ‘내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그때 내가 더 무언가를 해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그 가혹한 질문들이 밤마다 여러분을 괴롭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그 아픈 질문들을 조용히 거두어가십니다. 알란 님, 타오 님, 그리고 이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있는 모든 가족 여러분, 이것만은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벤의 아픔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어떤 질병도, 그 어떤 시련도 여러분의 사랑이 부족해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쏟았던 그 극진한 손길과 눈물겨운 정성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이유도 없습니다. 벤이 아빠의 꿈속에 나타나 ‘테스트는 다 통과했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던 그 기억을 떠올리십시오. 벤은 지금 하느님의 품 안에서 모든 얽매임을 벗어던지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하늘보다 훨씬 더 찬란한 영원한 빛 속에서 자유롭게 날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스스로를 향한 가혹한 질책을 주님의 십자가 아래 온전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느님은 여러분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여린 마음을 당신의 따뜻한 두 팔로 감싸 안고 계십니다.
벤은 참으로 마음이 고운 아이였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벤의 가슴속에는 이웃을 향한 놀라운 순수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삼촌이 큰 아픔을 겪을 때, 벤은 자신의 전부였던 저금통을 기꺼이 내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저금통을 깨거나 건네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그 마음의 고백 하나가 중요합니다. 나 혼자 살겠다고 곳간을 늘리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사랑하는 이의 아픔과 바꾸고 싶어 했던 그 순수한 제공의 마음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보화가 아니었을까요? 벤은 이미 그 짧은 삶 안에서, 계산 없는 사랑의 진실을 온전히 살고 있었습니다. 벤의 그 따뜻한 마음은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벤의 이름으로 세워지는 우물물처럼, 목마른 이들의 갈증을 채우며 생명수로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라이언, 형 벤을 기억하니? 형이 너와 함께 장난을 치고, 여행지에서 나란히 발걸음을 맞추던 그 모든 시간은 너의 마음에 심어진 소중한 사랑의 씨앗이야. 형은 지금도 네가 씩씩하게 웃으며 엄마 아빠의 곁을 지키는 모습을 보며 천국에서 흐뭇하게 미소 지을 거야. 형이 꿈꾸던 그 넓은 하늘을, 이제는 네가 형의 눈이 되어 더 당당하게 바라보렴. 형은 네가 아빠와 나누는 그 다정한 대화 속에, 네가 짓는 그 미소 속에 언제나 함께 머물고 있단다. 형이 꿈꾸던 그 비행기처럼, 이제는 네가 삶이라는 더 큰 하늘을 향해 너만의 꿈을 띄우렴. 형은 언제나 너의 가장 든든한 조종사가 되어줄 거야.
알란 님, 타오 님. 벤은 여러분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벤이 여러분의 삶에 남긴 그 따뜻한 온기와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 벤이 좋아하던 비행기 사진이나 환하게 웃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십시오.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상처 입은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줄 것입니다. 벤의 이름으로 세상의 목마른 이들에게 건네지는 작은 나눔의 손길들처럼, 벤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세상에서 생명수의 물결로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행하는 그 모든 자비로운 일들은, 벤의 사랑이 여전히 여러분의 삶을 통해 이 세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거룩한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벤을 잃은 것이 아니라, 벤이라는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더 깊이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당을 나서며 이 한 가지만 마음속에 품고 가십시오. 우리는 세상의 재산이나 썩어 없어질 곳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품었던 그 순수한 마음과 환한 미소를 기억하며, 우리도 주님 안에서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고 굳건히 살아가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다오. 주님의 평화가 여기 남겨진 모든 이들과 영원히 함께하기를 빕니다.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전능하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고 벤자민 보를 영원한 안식으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