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 저희가 당신의 초대를 소홀히 여겼음을 고백하오니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가 세상의 일에 매여 당신을 잊었음을 고백하오니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희가 당신의 잔치에 합당한 마음을 갖지 못했음을 고백하오니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아주 익숙하고도 당혹스러운 잔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이들이 하나같이 핑계를 댑니다. 밭을 사서 보러 가야 하고, 소를 샀으니 시험해 봐야 하고, 장가를 들었으니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사실 이 핑계들은 하나같이 정당해 보입니다. 밭을 사고 소를 사는 것, 가정을 꾸리는 것은 모두 삶의 중요한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핵심은 그들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잔치'라는 더 큰 부르심을 '거절'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상에 너무 깊이 몰두한 나머지, 주인이 베푼 그 거대한 기쁨의 자리, 즉 하느님의 식탁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채워나갑니다. 해야 할 일, 사야 할 물건, 처리해야 할 업무들로 가득 찬 일기장을 보며 우리는 그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의 일상이라는 밭을 살피는 동안, 정작 너를 부르시는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느냐?' 우리가 사랑하는 벤자민 보, 우리 벤은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이 잔치의 의미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소년이었습니다. 벤은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8학년 수학을 4학년 때 이미 다룰 만큼 명석했고, 클라우드 인프라와 AI라는 복잡한 기술의 세계를 놀이터처럼 누볐습니다. 하지만 벤의 지성은 결코 차갑지 않았습니다. 그 지성은 늘 사람을 향해 있었고, 그 지성은 늘 사랑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벤의 삶을 생각할 때 저는 '콘 짐 에어라인'이라는 그 아이의 작은 비행기 회사를 떠올립니다. 아빠와 함께 공항에 나가 비행기를 바라보며, 벤은 그저 기계의 성능을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벤은 그 비행기들이 사람들을 잇고, 세상을 연결하며, 먼 곳에 있는 이들을 가깝게 데려오는 그 '연결의 기쁨'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벤의 마음속에는 이미 하느님의 잔치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벤은 자기 자신만의 밭을 일구는 데 급급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벤은 자신의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고,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넓은 마음을 가진 소년이었습니다. 삼촌이 큰 병을 앓으셨을 때, 벤이 자신의 저금통을 전부 내어주겠다고 말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십시오. 벤은 그 돈이 얼마나 되는지, 그 돈이 정말로 필요한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픈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 하나로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주인이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을 데려오라'고 말하며 완성한 그 잔치의 정신입니다. 벤은 이미 그 나라의 시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직하게 이 고통의 무게를 마주해야 합니다. 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넉 달이 흘렀습니다. 알란 님, 타오 님, 그리고 라이언. 여러분의 일상은 여전히 벤이 없는 빈자리 때문에 텅 비어 있을 것입니다. 밤마다 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가도, 이내 찾아오는 정적 속에서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특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가 더 잘 돌보지 못했나', '혹시 내가 놓친 징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 서글픈 자책의 돌덩이가 어깨를 짓누르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은 그 돌덩이를 여러분의 가슴에서 조용히 들어내십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병은 부모의 탓이 아니며, 여러분의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 일도 결코 아닙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아픔을 함께 겪으시며 가장 가까이에서 눈물 흘리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벤이 아빠의 꿈속에 나타나 환하게 웃으며 '테스트는 다 통과했다'고 전했던 그 온화한 평화를 기억하십시오. 벤은 모든 시험을 마치고, 이제 하늘의 연회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그 가혹한 질책을 이제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 아래 온전히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은 충분히 사랑했고, 충분히 헌신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잔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벤 역시 그 짧은 생애 동안, 자신의 똑똑함이나 재능을 자랑하기보다, 늘 웃는 얼굴로 타인을 배려하고, 아픈 이들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법을 보여주었습니다. 벤은 자기 자신을 비워 사랑으로 채운 소년이었습니다. 벤의 삶은, 우리가 세상의 밭을 갈고 소를 돌보는 일에만 매몰되지 말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 영원한 잔치의 의미를 깨닫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라이언, 형 벤을 기억하니? 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너를 사랑했단다. 형이 꿈꾸던 그 넓은 하늘, 이제는 네가 형의 눈이 되어 더 씩씩하게 바라보렴. 엄마 아빠의 곁을 든든히 지키는 너의 그 다정한 발걸음마다 형의 사랑이 함께 머물고 있단다. 형은 언제나 네 삶의 가장 든든한 조종사가 되어, 네가 하늘을 향해 꿈을 펼칠 때마다 너를 응원해 줄 거야. 형이 너를 얼마나 아꼈는지, 그 사랑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렴. 알란 님, 타오 님, 여러분이 벤의 이름으로 행하는 작은 자비들, 세상의 소외된 이들에게 전해지는 그 조용한 나눔들이 바로 벤이 여러분의 삶을 통해 이 세상에 남긴 사랑의 흔적입니다. 벤은 떠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 속에서 사랑의 물결로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인은 '내 집이 가득 차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주님의 잔치는 결코 비어 있지 않습니다. 벤은 지금 그 잔치에서 가장 밝게 웃으며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벤을 그리워하며 흘리는 그 눈물조차도 주님은 당신의 손으로 닦아주고 계십니다. 오늘 성당을 나서며 이 한 가지만 마음속에 품고 가십시오. 우리는 잃어버린 것 때문에 끝나는 이들이 아니라, 벤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통해 영원한 사랑을 배운 이들입니다.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품었던 그 순수한 마음과 환한 미소를 기억하며, 우리도 주님 안에서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고 굳건히 살아가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빌어다오. 주님의 평화가 여기 남겨진 모든 이들과, 특별히 벤을 그리워하는 알란 님과 타오 님, 그리고 라이언의 가정 위에 영원히 함께하기를 빕니다.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시고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