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오늘 우리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 그 고요하고도 분주한 풍경 속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집에 들어서시자, 마르타는 분주하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성경은 그녀가 ‘많은 시중드는 일로 분주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마르타의 마음을 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사랑했고, 그분께 최선의 대접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곧 ‘걱정과 불안’이라는 짐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따지듯 묻습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우리가 살면서 수없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주님, 왜 제 상황은 이렇게 버겁습니까? 왜 저 혼자 이 짐을 져야 합니까?”
사랑하는 알란 님, 타오 님, 그리고 라이언. 벤자민 보, 우리 벤이 주님 품으로 돌아간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마르타처럼, 쉼 없이 몰아치는 그리움과 슬픔의 짐을 지고 분주히 하루를 버텨내고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그 짐이 너무 무거워,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하느님께서는 이토록 아픈 길을 걷게 하시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마르타의 이름을 부드럽게 두 번 부르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그 부르심 속에는 꾸중이 아니라, 짐에 눌려 있는 그녀를 향한 깊은 연민과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짊어진 그 슬픔의 무게를, 그 누구보다 주님께서 먼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벤자민은 참으로 지혜로운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의 삶은 마치 오늘 복음의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고요한 시간을 사랑하는 삶이었습니다. 벤은 아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습니다.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벤은 세상의 이치를,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사랑의 신비를 배웠습니다. 벤이 꿈꾸던 ‘콘 짐 에어라인(Con Chim Airlines)’은 단순히 비행기에 대한 열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더 넓은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그 순수한 영혼의 비행이었습니다. 벤은 1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가르쳐주었습니다. 삼촌의 아픔을 듣고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려 했던 그 마음은, 주님의 발치에 앉아 가장 좋은 몫을 선택한 마리아의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도 밤마다 ‘내가 더 잘했더라면’, ‘무언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는 자책의 목소리가 들리나요? 스스로를 향한 그 가혹한 질문을 이제는 멈추십시오.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의 죄도, 그 부모의 죄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그 자비의 빛을 기억하십시오. 질병은 벌이 아니며, 여러분의 잘못은 더더욱 아닙니다. 여러분은 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숭고한 사랑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벤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고, 벤은 그 사랑 안에서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벤은 여러분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고, 그 사랑을 안고 하느님 나라로 떠났습니다. 어떤 슬픔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예고 없이 찾아오며, 여러분은 그 모든 과정에서 벤의 가장 든든한 등불이 되어주었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그 가혹한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돌을 이제는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합니다. 그는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를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따로 뽑아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벤을 세상에 보내시기 전부터 이미 그 아이를 당신의 사람으로 따로 뽑아두셨습니다. 벤이 세상에 남긴 그 환한 미소, 그 깊은 호기심, 그 따뜻한 배려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벤이라는 작은 그릇을 통해 이 세상에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신 거룩한 섭리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귀한 선물을 15년 동안 곁에 두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지만, 벤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벤은 지금 하느님의 품 안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하늘을 가장 자유롭게 비행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꿈에 나타나 ‘테스트는 다 통과했어요’라고 말하며, 맑고 건강한 모습으로 서 있던 그 벤의 모습을 기억하십시오. 벤은 지금 하느님 나라의 연회장에서, 여러분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라이언, 형 벤은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형이었지. 형이 너에게 남겨준 그 밝은 미소와 따뜻한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렴. 형은 지금도 네가 씩씩하게 자라나고, 엄마 아빠의 손을 잡아드리는 모습을 보며 가장 기뻐하고 있단다. 형의 몫까지 이 세상에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렴. 형은 지금도 네 곁에서 너를 지켜주는 가장 밝은 별이 되어주고 있단다. 형이 꿈꾸던 그 넓은 하늘을, 이제는 네가 형의 눈이 되어 더 높이 바라보렴. 형은 네가 아빠와 함께 나누는 그 고요한 이야기들 속에, 그리고 네가 짓는 그 환한 미소 속에 언제나 함께 머물고 있단다.
벤의 삶은 멈춘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을 통해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벤의 이름으로 세워진 그 ‘사랑의 우물’처럼, 벤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목마른 이들의 갈증을 채우며 세상 곳곳에서 생명수로 흐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벤의 이름으로 행하는 작은 선행들, 남모르게 베푸는 자비들은 벤의 사랑이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거룩한 증거입니다. 벤은 우리에게 사랑이 죽음을 이긴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였습니다. 벤의 삶은 헛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 안에서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당을 나서며 이 한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에게 무거운 짐을 지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당신의 말씀을 듣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그 자리에 함께 머물자고 초대하십니다. 오늘 밤, 벤이 아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던 그 고요한 시간을 기억하며, 가족들과 함께 잠시 모든 소음을 끄고 침묵 속에 머물러 보십시오. 그리고 벤이 좋아했던 비행기 사진을 보거나, 아이가 남긴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십시오. 그 손길 안에, 그 침묵 안에 주님의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벤은 그 사랑의 대화 속에, 그 다정한 온기 속에 언제나 함께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벤의 그 맑은 웃음을 통해 여러분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꿈꾸던 그 하늘을 이제는 하느님의 빛 안에서 마음껏 날아다니렴.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렴. 주님의 평화가 여기 남겨진 우리 모두와 영원히 함께하기를 빕니다.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시고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