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마주하는 풍경은 참으로 소박합니다. 현관문 앞에 나란히 놓여 있는 아이의 신발, 책상 위에 무심히 꽂혀 있는 펜, 혹은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거실의 풍경 같은 것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에페소서에서 우리에게 낯선 언어로 다가옵니다. '진리로 허리를 두르고 정의의 갑옷을 입고,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로 발에 신발을 신으십시오.' 사도가 말하는 갑옷과 방패는 전쟁터의 무쇠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거룩한 일상의 태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입혀주신 전신갑주란,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이 땅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게 만드는 조용한 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이미지를 끝까지 붙들어 봅니다. 바로 '손에 쥔 든든한 방패'와 '한 걸음씩 단단히 내딛는 발걸음'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해 고백합니다. '주님은 나의 반석, 내 손을 싸워 이기게 하시며 내 손가락을 익숙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인생이란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이 불어오는 거친 들판과도 같습니다. 벤자민 보, 우리 벤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품었던 시선은 언제나 저 하늘의 넓은 지평을 향해 있었습니다. 벤은 비행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공항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항공기들이 가벼운 몸짓으로 하늘을 박차고 오르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아이의 눈동자는 별빛처럼 빛났습니다. 자신이 직접 세상에 띄우고 싶어 했던 가상의 항공사 '콘 짐 에어라인' 이야기를 아빠에게 들려주던 그 미소 속에는, 세상의 모든 높고 넓은 하늘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벤에게 세상은 좁은 방 안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지어놓으신 광활하고 경이로운 무대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진실을 먼저 마주해야 합니다. 세상의 찬바람이 불어올 때, 우리 가슴속에 찾아오는 서늘한 공백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벤이 우리의 품을 떠난 지 어느덧 넉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알란 님, 타오 님, 그리고 곁을 든든히 지키는 동생 라이언에게 일상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마주하는 빈자리는 너무나 크고 아픕니다. 문득 밤이 깊어 잠들지 못할 때, 마음속에서는 자꾸만 가혹한 질문들이 피어오를지 모릅니다. '내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혹시 내가 놓친 것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 서글픈 자책의 무게가 여러분의 어깨를 짓누르지는 않습니까? 가슴에 박힌 그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홀로 눈물 흘리며 지새운 밤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오늘 주님은 바로 그 아픈 자책의 돌을 여러분의 가슴에서 조용히 들어내십니다. 알란 님, 타오 님, 벤의 아픔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어떤 질병도, 그 어떤 시련도 여러분의 사랑이 부족해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쏟았던 그 눈물겨운 정성과 극진한 손길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이유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벤이 아빠의 꿈속에 나타나 환하게 웃으며 '테스트는 다 통과했다'고 전했던 그 온화한 평화를 기억하십시오. 벤은 지금 하느님의 품 안에서 모든 고통을 벗어던지고, 그토록 사랑하던 하늘보다 더 찬란한 빛 속에서 자유롭게 숨 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그 가혹한 질책을 이제 주님의 십자가 아래 온전히 내려놓으십시오.
벤은 참으로 마음이 고운 소년이었습니다. 벤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타인을 향한 맑은 순수함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벤은 주변을 살피고 나누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삼촌이 큰 아픔을 겪을 때, 벤은 자신의 전부였던 저금통을 기꺼이 내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저금통을 깨거나 건네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그 마음의 고백 하나가 중요합니다. 나 혼자 살겠다고 곳간을 가득 채우는 세상의 계산법이 아니라,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사랑하는 이의 아픔과 바꾸고 싶어 했던 그 순수한 제공의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보화가 아니겠습니까? 벤은 이미 그 짧은 삶 안에서, 하늘나라의 법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라이언, 형 벤을 기억하니? 네 곁에서 함께 장난을 치고, 여행지에서 나란히 발걸음을 맞추던 형의 그 따뜻한 미소는 네 안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형이 꿈꾸던 그 넓은 하늘을, 이제는 네가 형의 눈이 되어 더 씩씩하게 바라보렴. 엄마 아빠의 곁을 지키는 너의 그 다정한 발걸음마다 형의 사랑이 함께 머물고 있단다. 형은 언제나 네 삶의 가장 든든한 조종사가 되어, 네가 하늘을 향해 꿈을 펼칠 때마다 너를 응원해 줄 거야. 형이 너를 얼마나 아꼈는지, 그 사랑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렴.
알란 님, 타오 님. 벤은 여러분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벤이 여러분의 삶에 남긴 그 맑은 온기와 사랑은 지금도 여러분의 숨결마다 살아 있습니다. 오늘 밤, 벤이 좋아하던 비행기 사진이나 환하게 웃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십시오.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상처 입은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줄 것입니다. 우리는 벤을 잃은 것이 아니라, 벤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통해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당을 나서며 이 한 가지만 마음속에 품고 가십시오. 우리는 세상의 두려움 앞에 흔들리는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단단한 반석 위에서 평화의 복음을 신발처럼 신고 걸어가는 이들입니다.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품었던 그 순수한 마음과 환한 미소를 기억하며, 우리도 주님 안에서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고 굳건히 살아가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빌어다오. 주님의 평화가 여기 남겨진 모든 이들과 영원히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와 성자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복을 내리시어 평화로이 지켜주소서.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