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아주 익숙하지만, 동시에 가장 견디기 힘든 질문 하나를 마주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은 마치 우리 삶의 고통과 상처를 향한 질문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겪는 상실,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이 깊은 그리움, 그리고 가끔은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그 원망 섞인 질문들… 베드로는 일곱 번이라는 숫자를 제시하며 나름의 한계선을 긋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숫자는 단순히 반복의 횟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끝이 없는 사랑, 헤아릴 수 없는 자비의 바다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벤자민 보, 우리 벤은 열다섯 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도달하기 어려운 그 자비의 마음을 이미 몸소 보여주었던 아이였습니다. 여러분, 벤이 삼촌의 아픔을 보았을 때, 자신의 전부였던 저금통을 기꺼이 내어주겠다고 말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실제로 그 저금통을 깨뜨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마음의 방향입니다. 벤은 타인의 고통을 보았을 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나누고 싶어 했던 아이였습니다. 벤은 자신의 어린 마음에 이미 '일흔일곱 번'의 용서와 '일흔일곱 번'의 사랑을 담고 있었습니다. 벤의 그 순수한 마음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응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아픔이 있습니다. 바로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입니다. 벤이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지 석 달이 지난 지금, 알란 님과 타오 님,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의 마음속에 혹시 이런 생각들이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더 잘했더라면', '무언가 놓친 것은 아닐까', '내가 더 살폈더라면 벤이 덜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그 서늘한 의심들 말입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인 집회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분노와 격분은 가증스러운 것, 죄인은 이를 간직하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죄인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가혹하게 몰아세우는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비유를 통해, 주인에게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종이 정작 자신의 동료에게는 아주 작은 빚을 갚으라고 멱살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 종은 주인의 자비를 경험했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과 타인을 향해서는 자비를 닫아걸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벤의 부모인 여러분에게 결코 빚을 청구하지 않으십니다. 벤이 아팠던 것은 결코 여러분의 탓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던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그 부모의 죄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그 자비의 빛을 기억하십시오. 질병은 부모의 잘못이나 어떤 소홀함에서 오는 형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고통은 때로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속에,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곳에서 찾아옵니다. 여러분은 벤에게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숭고한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 사랑은 벤이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밝혀준 가장 따뜻한 등불이었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그 가혹한 죄책감이라는 들보를 이제는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은 충분히 사랑했고, 벤은 그 사랑 안에서 행복했습니다.
벤은 아빠의 이야기를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게 들어주던 아이였습니다. 아빠가 들려주는 꾸며낸 이야기들조차 벤에게는 소중한 보물이었고, 벤은 그 이야기를 마치 진실처럼, 아니 그보다 더 귀하게 마음속에 담아두었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쌓아온 그 시간들은 모래 위에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하신 하느님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사랑의 집입니다. 벤이 꿈꾸던 '콘 침(Con Chim) 항공사'의 비행기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듯, 벤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삶이라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서로의 손을 잡을 때, 그 손길 안에 벤의 온기가 담겨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로마서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위로합니다.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우리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주님의 품 안이라는 고백입니다. 벤은 지금 주님의 품 안에서 가장 자유롭고 평화롭게 쉬고 있습니다. 밤마다 밀려오는 그리움 속에서 여러분이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은 여러분이 벤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순수한 기도의 언어입니다. 그 눈물을 닦아내려 애쓰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그 눈물을 모아 벤에게 전달하고 계십니다. 벤은 여러분이 아빠와 함께 공항에서 비행기를 바라보며 나누던 그 고요한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벤은 여러분이 함께 나누었던 그 따뜻한 식탁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벤은 여러분을 떠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사랑 안에 머물며 여러분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늘에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라이언, 형 벤은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형이었지. 형이 너에게 남겨준 그 밝은 미소와 따뜻한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렴. 형은 지금도 네가 씩씩하게 자라나고, 엄마 아빠의 손을 잡아드리는 모습을 보며 가장 기뻐하고 있단다. 형의 몫까지 이 세상에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렴. 형은 지금도 네 곁에서 너를 지켜주는 가장 밝은 별이 되어주고 있단다. 형이 꿈꾸던 그 넓은 하늘을, 이제는 네가 형의 눈이 되어 더 높이 바라보렴.
사랑하는 알란 님, 타오 님. 여러분이 겪고 있는 그 아픔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벤의 이름으로 세워진 그 '사랑의 우물'처럼, 벤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목마른 이들의 갈증을 채우며 세상 곳곳에서 생명수로 흐르고 있습니다. 벤은 우리에게 사랑이 죽음을 이긴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여러분이 벤의 이름으로 행하는 작은 선행들, 남모르게 베푸는 자비들은 벤의 사랑이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거룩한 증거입니다. 벤은 여러분의 아들이자, 여러분의 수호천사이며, 하느님 사랑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오늘 성당을 나서며 이 한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용서는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 밤, 벤이 아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던 그 고요한 시간을 기억하며, 가족들과 함께 잠시 모든 소음을 끄고 침묵 속에 머물러 보십시오. 그리고 벤이 좋아했던 비행기 사진을 보거나, 아이가 남긴 웃음을 떠올리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십시오. 그 손길 안에, 그 침묵 안에 주님의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벤은 그 사랑의 대화 속에, 그 다정한 온기 속에 언제나 함께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벤의 그 맑은 웃음을 통해 여러분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꿈꾸던 그 하늘을 이제는 하느님의 빛 안에서 마음껏 날아다니렴.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렴. 주님의 평화가 여기 남겨진 우리 모두와 영원히 함께하기를 빕니다.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강복하시고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