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두운 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등잔의 불꽃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불꽃은 방 안의 어둠을 몰아내며 춤을 춥니다. 사람들의 눈은 자연스럽게 밝게 빛나는 그 불꽃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 불꽃을 밤새도록 꺼지지 않게 지켜주는 진짜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그것은 불꽃 아래, 작고 소박한 그릇 속에 침묵하며 담겨 있는 ‘기름’입니다. 기름은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빛을 향해 화려하게 소리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오기까지 그 긴 밤을 견디게 하는 것은 오직 그 작은 항아리 속에 남겨진 순수한 기름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의 위대한 스승이자 학자이신 성 아우구스티노 기념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청년 시절 세상의 지혜와 수사학, 세상이 말하는 화려한 학문의 불꽃을 좇아 방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세상의 지식과 논리로도 영혼의 깊은 목마름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달은 뒤,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명한 고백록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를 당신을 향해 살도록 창조하셨기에,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 쉴 때까지 안식을 얻지 못하나이다.”
오늘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우들에게 보내는 첫째 서간에서 세상의 지혜와 하느님의 지혜를 선명하게 대조합니다.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통해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은 가지가지하였지만 기름은 챙기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병에 담아 가지고 갔다.”
오늘 저는 이 ‘기름병’이라는 거룩한 이미지를 마음 깊이 품고, 주님의 말씀과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벤자민 보(Benjamin Vo)의 삶을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깊은 슬픔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벤, 벤자민이 하느님의 아버지 집으로 떠난 지 이제 꼭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6월 13일, 그 청천벽력 같았던 이별의 날로부터 두 달이 지난 오늘, 세상의 일상은 겉보기에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창밖의 풍경은 바뀌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며,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갑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친했던 형을 가슴에 묻은 아빠 알란 님과 엄마 타오 님, 그리고 동생 라이언의 마음속 시간은 어떠합니까?
두 달이라는 시간은 이 찢어지는 상실의 아픔이 무뎌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오히려 처음의 거대한 충격이 지나간 자리에 벤의 빈자리가 더 선명하고 뚜렷하게 각인되는 시기입니다. 벤이 평소에 사용하던 책상과 컴퓨터, 아이가 지적 호기심으로 밤을 지새우며 코딩하던 그 조용한 방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빈 의자, 아침에 눈을 뜰 때 들려오지 않는 아이의 밝은 목소리, “내가 그때 무언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우리 벤이 지금 내 곁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소리 없는 자책이 불현듯 파도처럼 밀려오는 날들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주님의 성전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그 어둡고 무거운 자책의 돌덩이를 온전히 치워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생 소경을 보시고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저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그 부모의 죄도 아니다.”(요한 9,3)
사랑하는 알란 님과 타오 님, 벤에게 찾아왔던 이별과 아픔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로서의 정성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여러분이 무언가를 놓쳐서 발생한 일도 아닙니다. 이 지상의 삶에는 인간의 미미한 지혜나 의지로는 다 설명할 수도, 막아낼 수도 없는 무작위의 아픔과 자연의 이치가 존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에게 벌을 내리시거나 슬픔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슬픔을 주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을 당신 병에 모으시며 함께 울고 계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벤자민에게 사람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헌신을 바쳤고, 벤은 부모님의 온전한 사랑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존중받는 아들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내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픈 자책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사랑은 하느님 앞에서 완벽했고, 그 사랑의 모든 순간은 하늘 나라에 영원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 아픈 가슴 위에 오늘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비추어 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세상의 웅변이나 인간의 뛰어난 지혜가 십자가의 의미를 헛되게 만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명성이나 지식의 불꽃만을 칭송하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그 불꽃 아래에 담긴 영혼의 깊이, 즉 기름의 순수함이 중요합니다.
우리 벤자민 보, 우리 벤은 참으로 뛰어난 지성을 가진 소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 나이에 이미 중학교 8학년 수학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14살에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인프라를 탐구하며 자신의 개발 환경(GitHub)에 수많은 코드와 프로그램을 직접 작성하던 아이였습니다. 벤의 머리는 매우 날카롭고 논리적이었으며, 세상의 어른들도 놀랄 만큼 깊은 기술적 지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벤의 삶에서 진짜 빛났던 것은 그 비상한 두뇌라는 ‘등불’ 뒤에 담겨 있던 ‘기름’, 곧 그의 순수하고 따뜻한 ‘영혼의 결’이었습니다.
벤의 기름병은 세상에 대한 겸손함과 가족을 향한 깊은 사랑,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맑은 영혼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벤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거나 남 위에 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을 늘 깊이 존경하고 따랐으며, 언제나 환하게 웃는 맑은 미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비상한 지성을 가졌음에도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벤이 자신의 항아리에 조용히 모아둔 영혼의 기름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신랑은 생각지도 못한 한밤중에 찾아왔습니다.
“한밤중에 ‘보라, 신랑이다. 나가 맞이하여라!’ 하는 소리가 났다.”
지상의 시간으로 볼 때 15년이라는 벤의 삶은 너무나 짧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왜 신랑이 이토록 일찍 벤을 불러가셨는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이 있습니다. 벤은 갑작스러운 밤이 찾아왔을 때 당황하거나 기름을 찾아 방황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벤의 영혼의 기름병에는 이미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순종, 가족들에게 받은 온전한 사랑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벤은 준비된 슬기로운 처녀처럼, 자신의 등불을 밝게 켜고 기꺼이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 천상의 혼인 잔치로 들어갔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평생을 바쳐 찾았던 그 절대적인 진리와 평화를, 우리 벤자민은 이미 그 맑은 영혼 안에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벤은 십자가의 신비 안에서 주님과 합일하여, 이제는 더 이상 투병의 고통도 없고 숨 가쁨도 없는 영원한 하느님의 빛 속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알란 님과 타오 님.
아들이 남겨둔 방의 컴퓨터나 책상을 바라보실 때, 벤이 밤새워 고민하며 적어 내려갔던 그 정교한 코드들과 수학 공식을 떠올려 보십시오. 벤이 훌륭한 프로그래머이자 수학자였던 것은 그 아이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심어놓으신 질서와 아름다움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벤은 이 지상의 제한된 모니터와 코드라는 창문을 넘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위대한 지혜를 직접 눈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벤이 가졌던 그 맑은 지성과 순수한 사랑의 기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하느님의 기억 속에,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벤은 하늘 나라에서 성 칼로 아쿠티스와 함께 천상의 잔치에 참여하며, 여러분의 삶을 수호천사처럼 지켜보고 있습니다. 슬픔이 밀려올 때마다, 벤이 여러분에게 주었던 그 무조건적인 사랑과 해맑은 웃음을 떠올리십시오. 벤은 아빠 엄마가 슬픔의 어둠 속에 홀로 갇혀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신이 남겨둔 영혼의 기름으로 여러분 마음의 등불을 다시 밝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생 라이언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라이언, 형 벤은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형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지. 형이 컴퓨터 앞에서 탐구하던 그 깊은 지성과, 너를 바라보며 지었던 그 따뜻한 미소는 이제 네 마음속 기름병 안에 귀한 보석으로 담겨 있단다. 라이언이 공부할 때나 마음이 흔들릴 때, 형이 보여주었던 그 성실함과 맑은 마음을 떠올려 보렴. 네가 씩씩하게 자라나고 엄마 아빠에게 따뜻한 힘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형이 하늘 나라에서 너를 바라보며 가장 뿌듯해하고 기뻐할 일이란다. 형은 언제나 네 곁에서 너를 응원하는 수호천사로 함께하고 있단다.
그리고 오늘 멀리서 이 기도를 바치고 계신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특히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고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이들, 몸과 마음의 중병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든 가정에 하느님의 깊은 위로가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제1독서의 마지막 구절은 우리 모두에게 참된 희망을 선포합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쌉니다.”
우리의 눈에는 15년 만에 끝난 벤의 삶이 비통하고 약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에는 벤의 삶이 세상의 그 어떤 장수보다 찬란하고 완벽하게 완성된 삶이었습니다. 벤은 하느님께서 주신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혼의 기름을 듬뿍 채웠고, 마침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서며, 우리가 가슴에 품고 돌아갈 작고 구체적인 실천 하나를 제안합니다.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시면 방 안의 전등을 잠시 끄고 촛불 하나나 작은 등잔 불빛을 가만히 켜보십시오. 그리고 그 불빛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 영혼의 항아리에도 벤자민처럼 순수한 사랑과 믿음의 기름을 채우게 하소서. 남에게 보이는 화려한 불꽃보다, 주님 앞에서 내면을 채우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곁에 있는 가족의 손을 가만히 잡고 온기를 나누어 주십시오. 그 작은 체온과 기도가 바로 오늘 복음이 말하는 ‘기름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이 세상에서 보여주었던 그 빛나는 지성과 순수한 마음, 그리고 따뜻한 미소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너의 기름병에 가득했던 그 순수한 사랑은 이제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빛으로 타오르고 있단다. 이제는 고통과 아픔이 없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네가 좋아하는 영원한 지혜의 샘물을 마음껏 마시며 평화로이 쉬려무나.
우리가 언젠가 하느님의 거룩한 혼인 잔치에서 다시 만날 그날까지, 슬픔 속에 있는 아빠 알란 님과 엄마 타오 님, 그리고 동생 라이언을 위해 늘 하느님께 기도해다오.
십자가의 지혜이시며 영원한 안식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능하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시어 영원히 머물게 하소서.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