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 저희를 자비로이 용서하시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소서. 그리스도님, 슬픔 속에 있는 저희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주님, 저희가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밤이 깊어갈 때, 방 안의 불이 꺼지고 온 세상이 고요에 잠기면, 유독 크게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방 한구석에 놓인 시계의 초침 소리이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홀로 삼키는 누군가의 깊은 한숨 소리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 모니카 기념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모니카 성녀는 평생을 ‘깨어 기다리는 사람’으로 살았던 어머니였습니다. 아들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을 멀리하고 방황할 때, 그녀는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눈물은 단순히 슬픔의 배출구가 아니라, 아들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켜두었던 ‘사랑의 등불’이었습니다. 모니카 성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늘 깨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온 삶은 기다림이었고, 그 기다림은 마침내 아들의 회개라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강력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님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려는 경고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파수꾼의 마음, 자녀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대문을 열어두는 어머니의 마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 ‘깨어 지키는 사랑’이라는 이미지를 마음에 품고, 주님의 말씀과 우리 곁을 떠난 벤자민 보(Benjamin Vo)의 삶을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짜 아픔을 솔직하게 마주해야 합니다.
우리 벤, 벤자민이 하느님의 품으로 떠난 지 이제 꼭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6월 13일, 그 청천벽력 같았던 이별의 날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일상은 겉보기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고, 계절은 소리 없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친했던 형을 떠나보낸 아빠 알란 님과 엄마 타오 님, 그리고 동생 라이언의 마음속은 어떠합니까?
두 달이라는 시간은 이 거대한 슬픔이 무뎌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오히려 처음의 충격이 지나간 자리마다, 벤의 빈자리가 더 뚜렷하고 아프게 드러나는 시기입니다. 벤이 평소에 입고 다니던 농구 스웨트셔츠가 옷장에 그대로 걸려 있을 때, 배드민턴 라켓이 주인을 잃은 채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것을 볼 때, 식탁 위에 놓인 빈 의자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을 파고드는 그 통증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가슴을 짓누르고, “내가 그때 더 잘 돌봤더라면 우리 벤이 지금 곁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소리 없는 자책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날들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 무겁고 어두운 죄책감의 돌덩이를 완전히 치워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생 소경을 보시고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그 부모의 죄도 아니다.”
벤에게 찾아왔던 아픔과 이별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놓쳐서도 아니고, 부모로서의 정성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이 지상의 삶에는 인간의 지혜와 의지로는 다 막을 수 없는 자연의 법칙과 무작위의 슬픔이 존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에게 벌을 내리시거나 아픔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부디 “내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픈 자책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주셨고, 벤은 아빠의 든든한 아들로, 엄마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보석으로,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완벽했고, 하느님께서는 그 사랑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이제 이 아픈 마음에 오늘 들려오는 복음의 빛을 비추어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올 때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종은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우리 벤자민은 참으로 이 말씀처럼 매 순간을 성실하고 충실하게 살았던 아이였습니다.
벤은 “노력하는 것 자체가 전부다”(Trying is all that matters)라는 아름다운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소년이었습니다. 농구 팀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 위해 두꺼운 스웨트셔츠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코트를 누비던 모습, 배드민턴 코트에서 셔틀콕을 끝까지 쫓아가며 온 힘을 다해 라켓을 휘두르던 그 열정적인 모습은 벤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벤은 단순히 이기기 위해 운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 자체를 사랑했고,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 정직한 땀방울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배드민턴 팀에 당당히 합격하여 온 가족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던 그 순간은, 벤이 남긴 가장 찬란한 승리의 기억이었습니다.
이러한 벤의 모습이야말로 오늘 복음이 말하는 “깨어 있는 사람”, “준비된 서번트”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벤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날카로운 지성으로 수학과 기술을 탐구하면서도, 운동장에서는 온몸으로 부딪치며 땀을 흘렸습니다. 벤의 삶은 비록 15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는 밀도 높은 열정과 순수한 노력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벤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삶이라는 달란트를 가장 아름답고 충실하게 사용한 슬기로운 종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우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슬픔 속에 있는 알란 님과 타오 님, 그리고 라이언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가장 강력한 약속입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의 성실하심은 우리의 슬픔보다 강하고, 죽음의 권세보다 큽니다. 하느님께서는 벤자민을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친교 안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벤은 이제 이 지상의 고통과 아픔, 숨 가쁜 투병의 시간을 모두 뒤로하고, 하느님의 찬란한 빛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벤이 그토록 좋아하던 넓은 하늘에서, 이제는 아무런 제약 없이 가장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알란 님과 타오 님.
모니카 성녀가 눈물로 기도하며 아들의 영혼을 지켰듯이, 여러분이 벤을 위해 바친 눈물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벤은 이제 하늘 나라의 잔치에서 성 칼로 아쿠티스와 함께 머물며 여러분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벤은 여러분이 슬픔에 겨워 주저앉아 있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코트 위에서 보여주었던 그 씩씩한 모습처럼, 아빠 엄마도 힘을 내어 이 지상의 여정을 굳건히 걸어가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동생 라이언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라이언, 형 벤은 너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지. 형이 남겨준 그 뜨거운 열정과 “노력하는 것이 전부다”라는 멋진 마음은 이제 네 안에서 계속 살아 숨 쉬고 있단란다. 네가 형의 몫까지 씩씩하게 자라나고, 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아드리는 든든한 아들이 되는 것, 그것이 형이 하늘에서 너를 바라보며 가장 기뻐할 일일 거야. 네가 공부할 때나 운동할 때, 혹은 형이 너무나 보고 싶어 눈물이 날 때마다 눈을 감고 형의 이름을 불러보렴. 형은 언제나 네 곁에서 따뜻한 바람이 되어 너를 안아줄 거란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고 이 기도를 함께 바치고 계신 모든 분.
우리는 오늘 주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매 순간을 깨어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의 슬기로운 종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준비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 성당 문을 나서며, 우리가 가슴에 품고 갈 한 가지 작은 실천을 제안합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시면, 옷장 속에 있는 벤의 옷이나 혹은 여러분이 아끼는 편안한 스웨트셔츠를 가만히 만져보십시오. 그리고 벤이 가졌던 그 정직한 노력의 마음을 기억하며 나지막이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저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벤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가게 하소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 자체에 감사하며, 제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충실한 종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곁에 있는 가족의 어깨를 지긋이 감싸 안아주며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주십시오. 그 작은 몸짓 하나가 바로 오늘 복음이 말하는 ‘깨어 준비하는 삶’의 시작입니다.
벤자민 보, 사랑하는 우리 벤.
네가 스웨트셔츠를 입고 농구 코트를 누비며 보여주었던 그 열정적인 땀방울과 환한 미소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거란다. 네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노력하는 것이 전부다”라는 그 귀한 고백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며 살아갈게. 이제는 고통 없는 하늘 나라에서, 네가 좋아하는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평화로이 쉬려무나.
우리가 언젠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 기쁨의 포옹을 나눌 그날까지, 슬픔 속에 있는 아빠 엄마와 동생 라이언을 위해 늘 하느님께 기도해다오.
성실하신 주님께서 벤자민과 그의 가족, 그리고 오늘 함께 기도하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위로와 평화를 내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성 성실하신 하느님 아버지, 슬픔 속에 있는 이 가정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하늘의 평화로 채워주시고, 우리 벤자민 보가 천상 낙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