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 영혼의 갈망을 채우고, 하늘 나라의 참된 희망을 품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당신의 길을 따르지 못하고 인간의 생각에 머물렀음을 고백하오니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슬픔과 목마름을 위로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주님, 저희에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소서.
어느 집 방 한구석, 책상 서랍 깊은 곳이나 선반 위에 가만히 놓여 있는 작은 저금통 하나를 상상해 봅니다.
그 안에는 소년이 한 푼 두 푼 모아둔 용돈과 소박한 꿈들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먼지가 조금 앉았을지도 모르는 그 작은 플라스틱 저금통은 겉보기에는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물건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깨뜨려 세상의 거대한 보물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작은 저금통이 품고 있는 진짜 가치는 그 안에 담긴 동전의 액수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며 온 마음을 내어주려 했던 한 소년의 순수한 사랑에 있습니다. 그 저금통은 깨어지지도 않았고, 강제로 열리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한 영혼이 지녔던 가장 아름다운 헌신의 온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우리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뜨거운 고백을 들려줍니다.
“그분 말씀이 제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고 뼈속에 가두어 둔 불꽃 같아, 저는 가두어 두기에도 지쳐 견디다 못하겠습니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로 날마다 놀림감이 되고 모든 이에게 비웃음을 당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지친 나머지, 그는 다시는 주님을 기억하지 않고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 그의 뼈속에 갇힌 그 거룩한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고, 가두어 두려 해도 가두어 둘 수 없는 그 뜨거운 사랑의 불꽃이 그를 다시 주님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오늘 저는 이 ‘뼈속에 가두어 둔 불꽃’이라는 이미지를 마음 깊이 품고, 오늘 들려오는 성경 말씀과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는 우리 벤, 벤자민 보(Benjamin Vo)의 삶을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이 거룩한 주님의 성전에서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슬픔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마주해야 합니다.
우리 벤자민이 하느님의 아버지 집으로 떠난 지 이제 약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6월 13일, 그 믿을 수 없었던 이별의 날로부터 오늘까지의 시간은 남겨진 이들에게는 마치 멈춰버린 시계처럼 무겁고도 가혹하게 흘러왔을 것입니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8월의 뜨거운 여름을 지나 가을의 길목으로 향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에 묻은 아빠 알란 님과 엄마 타오 님,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친했던 형을 잃은 동생 라이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시린 겨울바람이 불고 있을 것입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은 이 거대한 상실의 아픔이 아물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오히려 처음의 충격과 분주함이 지나간 자리에, 벤의 빈자리가 더 선명하고 뚜렷하게 각인되는 시기입니다. 벤이 평소에 앉아 코딩을 하던 컴퓨터 의자, 아빠와 함께 비행기를 보며 웃던 그 거실의 풍경, 식탁 위에 놓인 빈 그릇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을 파고드는 그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들려오지 않는 아이의 밝은 인사 소리, 저녁 시간에 비어 있는 아이의 방을 바라보며 부모님의 마음속에는 “왜?”라는 질문과 함께, 소리 없는 자책과 무거운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알란 님과 타오 님, 오늘 저는 주님의 성전에서 여러분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그 무거운 슬픔의 무게를 함께 나누며, 하느님의 따뜻한 위로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이별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로서 무언가를 놓쳐서도 아니고, 정성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삶의 신비와 아픔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징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당신의 병에 모으시며, 여러분의 곁에서 가장 아픈 눈물로 함께 울고 계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은 벤에게 사람이 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숭고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벤은 그 사랑 안에서 충분히 행복했고, 누구보다 깊은 존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내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픈 생각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사랑은 하느님 앞에서 온전했습니다.
이제 이 아픈 가슴 위에 오늘 들려오는 복음의 말씀이 어떻게 빛으로 다가오는지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시어 많은 수난을 겪으시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 “주님,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반박은 우리 모두의 솔직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께 울부짖고 싶습니다. “주님, 안 됩니다! 우리 착하고 똑똑한 벤자민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결코 이런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15년이라는 벤의 삶이 너무나 짧고, 미완성된 것처럼 보입니다.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꿈을 펼칠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리 일찍 데려가셨는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를 미워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을 지상의 짧은 시간에만 가두지 말고, 영원이라는 하느님의 지평으로 넓히라는 초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은 역설적입니다. 세상은 더 오래 살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널리 이름을 떨치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계산법은 다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그 삶의 시간 동안 얼마나 깊이 사랑했고, 얼마나 순수하게 자신을 내어놓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 때문에, 그리고 사랑 때문에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놓은 영혼은 결코 생명을 잃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영원히 완성됩니다.
우리 벤자민 보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벤은 비록 15년이라는 짧은 지상의 여정을 걸었지만,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말한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라는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벤의 모습 중에 참으로 아름답고 다정한 기억이 있습니다. 벤이 열다섯 살이었을 때, 뇌졸중으로 쓰러져 고통받고 있던 윌리엄 삼촌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린 소년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부모님에게 다가가 자신이 그동안 소중히 모아두었던 저금통을 통째로 내놓아 삼촌을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 저금통을 깨뜨려 돈을 전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삼촌에게는 보험이 있었고 상황이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저금통을 깨뜨렸느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전부, 자신의 온 세계와도 같았던 그 저금통을 기꺼이 내어놓겠다고 결심했던 그 ‘마음의 제안’ 자체가 이미 완벽한 사랑의 봉헌이었습니다.
그것은 계산되지 않은 사랑이었습니다. 15세의 소년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려 했던 그 순간, 벤의 뼈속에는 예레미야가 고백했던 그 거룩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어른들은 손익을 계산하고 자신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지만, 우리 벤은 오직 사랑하는 가족의 아픔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으려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삶의 본질이며, 로마서가 말하는 “영적 예배”였습니다.
벤은 참으로 명석하고 지혜로운 아이였습니다. 아빠를 닮아 수학과 논리에 비범한 재능을 보였고, 14살에 이미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인프라를 공부하며 자신만의 디지털 세계를 코딩해 나가던 천재적인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벤의 진짜 위대함은 그의 날카로운 지성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지성을 움직이던 이토록 따뜻하고 다정한 영혼에 있었습니다. 벤은 날아다니는 새들과 비행기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나중에 자라면 ‘con chim airlines’(새 항공사)라는 이름의 멋진 항공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낄낄거리며 수줍게 짓던 그 해맑은 미소와 웃음소리는, 벤의 영혼이 얼마나 맑고 순수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알란 님과 타오 님.
여러분은 벤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벤은 자신이 가졌던 그 맑은 지성과 순수한 사랑의 불꽃을 품고, 이제 하느님의 영원한 품 안으로 들어가 천상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벤은 이제 이 지상의 제한된 모니터와 코드라는 창을 넘어, 온 우주를 설계하신 하느님의 위대한 지혜를 직접 마주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벤이 그토록 사랑했던 푸른 하늘보다 더 넓고 평화로운 하느님의 나라에서, 벤은 이제 성 칼로 아쿠티스와 함께 머물며 여러분을 수호천사처럼 지켜보고 있습니다.
벤은 지난 6월 25일 밤, 아빠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괜찮아요, 제가 아빠 엄마를 지켜봐 드릴게요.”
이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벤이 하늘 나라에서 여러분에게 보내는 진짜 약속입니다. 벤은 여러분이 슬픔의 어둠 속에만 갇혀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꿈꾸었던 ‘con chim airlines’의 비행기처럼, 여러분의 마음도 슬픔의 무게를 털어내고 희망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지상에서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고, 남겨진 동생 라이언과 함께 굳건히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늘에 있는 벤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동생 라이언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라이언, 형 벤은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형이자 가장 다정한 친구였지. 형이 너에게 보여주었던 그 성실함과, 삼촌을 돕고자 했던 그 따뜻한 마음은 이제 네 마음속에 소중한 불꽃으로 전해졌단다. 라이언이 형의 몫까지 씩씩하게 자라나고, 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아드리는 든든한 아들이 되는 것, 그것이 형이 하늘 나라에서 너를 바라보며 가장 뿌듯해하고 기뻐할 일이란다. 형은 언제나 네 곁에서 너를 응원하는 수호천사로 함께하고 있단다.
그리고 오늘 멀리서 이 기도를 함께 바치고 계신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특히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고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부모님들과, 삶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든 가정에 하느님의 깊은 평화가 함께하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오른손으로 여러분을 굳세게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강론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가 실천할 수 있는 작고 구체적인 일 하나를 제안합니다.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시면 여러분의 서랍 속에 있는 작은 저금통이나 지갑을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벤자민이 삼촌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기꺼이 내어놓으려 했던 그 순수한 마음을 기억해 보십시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계산을 하고, 얼마나 내 것을 움켜쥐려고만 합니까? 오늘 하루만큼은 내 곁에 있는 가족에게, 혹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나의 시간과 마음,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작은 사랑을 실천해 봅시다. 그것이 바로 오늘 제2독서가 말하는 “이 시대에 아첨하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는” 길이며, 벤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아름다운 유산입니다.
사랑하는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con chim airlines’를 말하며 짓던 그 눈부신 미소와, 삼촌을 위해 저금통을 내놓으려 했던 그 다정한 마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너의 마음속에 타오르던 그 순수한 사랑의 불꽃은 이제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이 되어 우리 앞길을 밝혀주고 있단다. 이제는 아픔도 눈물도 없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네가 좋아하는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평화로이 쉬려무나.
우리가 언젠가 하느님의 거룩한 잔치에서 다시 만나 기쁨의 포옹을 나눌 그날까지, 슬픔 속에 있는 아빠 엄마와 동생 라이언을 위해 늘 하느님께 기도해다오.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언제 어디서나 여러분에게 평화를 내리시고 슬픔 속에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기를 빕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강복하소서.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