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십자가의 신비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음을 고백하나이다.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가 고통의 무게에 눌려 희망을 잃었음을 고백하나이다.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희가 당신의 구원 사업을 잊고 살았음을 고백하나이다. 자비를 베푸소서.
오늘 우리는 광야의 뜨거운 모래바람과 그 속에 놓인 구리 뱀이라는, 아주 오래된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을 관통하는 한 이미지를 마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길을 걷다 지쳤습니다.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왜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그들의 마음은 불신과 원망으로 가득 찼고, 그 결과 그들은 치명적인 뱀들에게 물리고 말았습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상실의 고통,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 우리 또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광야를 헤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알란 님, 타오 님, 그리고 라이언. 우리 벤자민 보가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도 그 광야 한복판에 서 있는 것만 같을 것입니다. 밤마다 찾아오는 그리움, 문득 벤의 방을 지나치거나 그가 좋아하던 비행기 사진을 볼 때마다 밀려오는 그 아픈 질문들… '왜 우리 벤이어야 했는가?',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그 서늘한 의구심들 말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 광야의 뱀에게 물린 자들에게 구리 뱀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구리 뱀은 단순히 뱀의 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치유'의 약속이었고, '바라봄'을 통한 구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당신 스스로를 그 구리 뱀에 비유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그 고통을 뚫고 지나가신 하느님의 사랑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벤은 열다섯 해를 살며 그 사랑의 빛을 누구보다 맑게 간직했던 아이였습니다. 여러분, 벤이 그저 영리하고 수학을 잘하던 아이였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다정하고 사려 깊은 아이였는지 기억하십시오. 그는 비행기를 사랑했고, 아빠와 함께 공항에서 비행기를 spotting하며 꿈을 키웠습니다. 그 아이의 눈 속에 담겨 있던 그 넓은 하늘, 그 순수한 호기심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는 혹시 벤이 아팠던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내가 무언가 놓친 것은 아닐까'. 오늘 이 십자가 앞에서 제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벤의 아픔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그 부모의 죄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그 자비의 빛을 기억하십시오. 질병은 부모의 소홀함이나 어떤 실수에 대한 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고통은 때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찾아옵니다. 여러분은 벤에게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숭고한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 사랑은 벤이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밝혀준 가장 따뜻한 등불이었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그 가혹한 죄책감이라는 들보를 이제는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은 충분히 사랑했고, 벤은 그 사랑 안에서 행복했습니다.
벤은 어린 나이에도 삼촌의 아픔을 보며 자신의 저금통을 기꺼이 내어주겠다고 말했던 아이였습니다. 실제로 그 저금통을 깨뜨리지는 않았지만, 그 '내어줌'의 마음은 벤의 영혼이 얼마나 고귀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마음은 벤이 하느님의 반석 위에 자신의 삶을 짓고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벤은 지금 하늘나라의 연회장에서,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하늘을 가장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빠의 꿈에 나타나 '테스트는 다 통과했어요'라고 말했던 그 맑은 목소리는, 벤이 지금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온전하고 자유로운지를 알려주는 희망의 증거입니다. 벤은 여러분을 떠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사랑 안에 머물며 여러분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늘에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라이언, 형 벤은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형이었지. 형이 너에게 남겨준 그 밝은 미소와 따뜻한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렴. 형은 지금도 네가 씩씩하게 자라나고, 엄마 아빠의 손을 잡아드리는 모습을 보며 가장 기뻐하고 있단다. 형의 몫까지 이 세상에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렴. 형은 지금도 네 곁에서 너를 지켜주는 가장 밝은 별이 되어주고 있단다. 형이 꿈꾸던 그 넓은 하늘을, 이제는 네가 형의 눈이 되어 더 높이 바라보렴.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은 고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너머에 있는 부활의 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것입니다. 벤은 지금 그 빛 안에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벤의 이름으로 행하는 작은 선행들, 남모르게 베푸는 자비들은 벤의 사랑이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거룩한 증거입니다. 여러분이 벤의 이름으로 세운 그 우물에서 흐르는 물이 목마른 이들의 갈증을 채우듯, 벤의 사랑은 지금도 여러분의 삶을 적시고 있습니다.
오늘 성당을 나서며 이 한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용서는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 밤, 벤이 아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던 그 고요한 시간을 기억하며, 가족들과 함께 잠시 모든 소음을 끄고 침묵 속에 머물러 보십시오. 그리고 벤이 좋아했던 비행기 사진을 보거나, 아이가 남긴 웃음을 떠올리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십시오. 그 손길 안에, 그 침묵 안에 주님의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벤은 그 사랑의 대화 속에, 그 다정한 온기 속에 언제나 함께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벤의 그 맑은 웃음을 통해 여러분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꿈꾸던 그 하늘을 이제는 하느님의 빛 안에서 마음껏 날아다니렴.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렴. 주님의 평화가 여기 남겨진 우리 모두와 영원히 함께하기를 빕니다.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시고,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평화롭게 돌아가십시오.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