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과 함께.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종종 하늘의 기상도를 살피듯, 우리 삶에 불어닥치는 바람과 구름을 유심히 관찰하곤 합니다. 서쪽에서 구름이 일면 비가 올 것을 알고, 남풍이 불면 무더워질 것을 단번에 알아채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징표는 그렇게도 잘 분별하면서, 정작 우리 눈앞에 펼쳐진 ‘지금 이 때’의 신비와 그분의 자비는 왜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고 부드럽게 타박하십니다. 세상의 이치에는 밝으면서도, 정작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구비마다 어떻게 손길을 뻗치고 계신지는 놓치고 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꿰뚫어 보시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서에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그 합당한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 일러줍니다. 겸손과 온유로, 인내를 가지고 사랑 안에서 서로를 참아내며 성령이 주시는 일치의 띠를 지키라고 당부합니다. 우리 몸이 하나이고 성령도 하나이듯, 우리를 품으신 하느님 아버지도 한분이시며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이 거대한 일치의 그물망 안에서, 우리의 매일은 결코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파편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라는 단단한 대지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 설 때, 우리 기억 속의 맑은 소년, 벤자민 보가 깊이 다가옵니다. 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 세상의 이치와 공학의 원리에 눈을 반짝이던 아이였습니다. 아빠가 들려주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귀담아듣고, 머릿속으로 거대한 비행기의 항로와 논리를 그리며 미소 짓던 벤. 벤은 아빠와 함께 공항 유리창 너머로 날아오르는 비행기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직접 세상에 띄우고 싶어 했던 가상의 항공사 ‘콘 짐 에어라인’ 이야기를 나눌 때면 온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하늘은 두려운 미지의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지어 놓으신 광활하고 경이로운 무대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벤이 우리의 품을 떠난 지 어느덧 넉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알란 님, 타오 님, 그리고 곁을 지키는 동생 라이언. 일상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마주하는 빈자리 앞에서, 혹은 벤이 좋아하던 비행기 모형이나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는 아픔을 마주하십니다. 문득 밤이 깊어 잠들지 못할 때, 마음속에서는 자꾸만 가혹한 질문들이 피어오를지 모릅니다. ‘내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혹시 내가 놓친 것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 서글픈 자책의 무게가 여러분의 어깨를 짓누르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거룩한 말씀 안에서, 주님은 바로 그 무거운 자책의 돌을 여러분의 마음에서 조용히 들어내십니다. 알란 님, 타오 님, 벤의 아픔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어떤 질병도, 그 어떤 시련도 여러분의 사랑이 부족해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쏟았던 그 눈물겨운 정성과 극진한 손길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이유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벤이 아빠의 꿈속에 나타나 환하게 웃으며 ‘테스트는 다 통과했다’고 전했던 그 온화한 평화를 기억하십시오. 벤은 지금 하느님의 품 안에서 모든 고통을 벗어던지고, 그토록 사랑하던 하늘보다 더 찬란한 빛 속에서 자유롭게 숨 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그 가혹한 질책을 이제 주님의 십자가 아래 온전히 내려놓으십시오.
벤은 참으로 마음이 고운 소년이었습니다. 벤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타인을 향한 맑은 순수함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삼촌이 큰 아픔을 겪을 때, 벤은 자신의 전부였던 저금통을 기꺼이 내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저금통을 깨거나 건네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그 마음의 고백 하나가 중요합니다. 나 혼자 살겠다고 곳간을 가득 채우는 세상의 계산법이 아니라,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사랑하는 이의 아픔과 바꾸고 싶어 했던 그 순수한 제공의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보화가 아니겠습니까? 벤은 이미 그 짧은 삶 안에서, 하늘나라의 법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라이언, 형 벤을 기억하니? 네 곁에서 함께 장난을 치고, 여행지에서 나란히 발걸음을 맞추던 형의 그 따뜻한 미소는 네 안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형이 꿈꾸던 그 넓은 하늘을, 이제는 네가 형의 눈이 되어 더 씩씩하게 바라보렴. 엄마 아빠의 곁을 지키는 너의 그 다정한 발걸음마다 형의 사랑이 함께 머물고 있단다. 형은 언제나 네 삶의 가장 든든한 조종사가 되어, 네가 하늘을 향해 꿈을 펼칠 때마다 너를 응원해 줄 거야.
알란 님, 타오 님. 벤은 여러분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벤이 여러분의 삶에 남긴 그 맑은 온기와 사랑은 지금도 여러분의 숨결마다 살아 있습니다. 오늘 밤, 벤이 좋아하던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십시오.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상처 입은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줄 것입니다. 우리는 벤을 잃은 것이 아니라, 벤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통해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당을 나서며 이 한 가지만 마음속에 품고 가십시오. 우리는 세상의 계산과 두려움에 매여 사는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일치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품었던 그 순수한 마음과 환한 미소를 기억하며, 우리도 주님 안에서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고 굳건히 살아가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빌어다오. 주님의 평화가 여기 남겨진 모든 이들과 영원히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능하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영원한 평화와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