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평화를 주시는 주님의 은총이 오늘 이 기도의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이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 저희의 나약함을 자비로이 굽어보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슬픔을 위로하여 주소서. 주님, 저희에게 영원한 희망을 주소서.
식탁 위에 놓인 작은 잔 하나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우리는 매일 물을 마시거나 차를 마시기 위해 잔을 집어 듭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그 잔의 겉모습을 봅니다. 겉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얼룩이 있으면 깨끗이 닦아냅니다. 겉보기에 깨끗하고 윤이 나는 잔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겉이 화려하고 깨끗한 잔이라 할지라도, 그 안이 비어 있거나 혹은 그 안쪽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다면 우리는 결코 그 잔으로 목을 축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목마를 때 진정으로 찾는 것은 잔의 화려한 외관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맑고 시원한 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잔’의 비유를 통해 위선적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십니다.
“눈먼 바리사이여!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래야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히 청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우리의 마음,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진짜 알맹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엄중한 질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규정과 형식, 남들에게 보이는 평판과 율법의 미세한 조항들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박하와 회향과 커민의 십일조를 바치는 것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외적인 의무에는 철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즉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라는 마음의 알맹이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의 잔 안쪽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잔 안쪽’이라는 이미지를 마음에 품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참된 사랑과 믿음의 신비를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마음의 가장 아픈 곳을 정직하게 대면해 봅니다.
우리 벤자민 보(Benjamin Vo)가 하느님의 품으로 떠난 지 이제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6월 13일, 그 청천벽력 같았던 이별의 날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일상은 겉보기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로 분주하며, 계절은 소리 없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그리고 세상에 둘도 없던 형을 떠나보낸 아빠 알란 님과 엄마 타오 님, 그리고 동생 라이언의 마음속 ‘잔 안쪽’은 어떠합니까?
그 안은 여전히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눈물로 가득 차 있고, 문득문득 찾아오는 텅 빈 외로움과 아픔으로 요동치고 있을 것입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은 이 거대한 상실을 받아들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오히려 처음의 충격이 지나간 자리마다, 벤의 빈자리가 더 날카롭고 선명하게 만져지는 시기입니다. 벤이 쓰던 방의 고요함, 아이가 좋아하던 음식들, 함께 나누었던 대화의 잔상들이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그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깊은 슬픔 속에서 우리는 때로 하느님께 묻고 싶어집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아픔을 주십니까? 왜 그토록 맑고 똑똑한 벤자민을 이토록 일찍 데려가셨습니까?”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소리 없는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은 아닐까? 내가 아이의 아픔을 더 일찍 알아채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부모로서 무언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오늘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 무겁고 어두운 죄책감의 돌덩이를 완전히 치워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생 소경을 보시고 제자들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그 부모의 죄도 아니다.”
벤에게 찾아왔던 질병과 이별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놓쳐서도 아니고, 정성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이 지상의 삶에는 인간의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와 자연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벌을 내리시거나 아픔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을 당신의 병에 모으시며, 여러분과 함께 울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벤자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주셨고, 벤은 그 사랑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소년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오직 벤을 향한 순수한 사랑만을 바쳤을 뿐입니다.
이제 이 아픈 마음의 잔 안쪽으로 복음의 빛을 비추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슬픔을 억지로 없애라는 뜻이 아닙니다. 슬픔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기에, 우리가 벤을 사랑한 만큼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고 거룩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잔 속의 깨끗함’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위선이나 형식적인 체념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벤자민이 남겨준 순수한 사랑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 Benjamin Vo는 참으로 그 ‘잔 안쪽’이 맑고 아름다운 아이였습니다. 벤의 지성은 날카롭고 뛰어났지만, 그의 영혼은 언제나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지난 7월 23일, 아빠 알란 님이 꾸었던 꿈 이야기를 기억해 봅니다. 꿈속에서 아빠와 벤은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줄의 끝에서, 벤자민이 아빠를 위해 아이스크림 값을 계산했습니다.
이 소박하고 일상적인 꿈의 장면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아이스크림을 사는 일은 아주 작고 평범한 일이지만, 그 안에는 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들어있던 알맹이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벤은 아빠에게 늘 대접받고 보살핌을 받는 아이에 머물지 않고, 아빠의 짐을 덜어주고 싶어 했으며, 아빠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 했던 성숙하고 따뜻한 아들이었습니다. 비록 꿈속의 한 장면이었지만, 그것은 벤의 영혼이 지니고 있던 본질, 즉 ‘사랑을 건네는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벤의 잔 안쪽은 이처럼 아빠를 향한, 그리고 가족을 향한 깊고 자상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벤은 겉치레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기술과 수학을 순수하게 탐구했고, 동생 라이언에게 든든한 형이 되어주었으며, 부모님께 존경과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벤의 삶 자체가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실천하는 삶이었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비어 있던 바리사이들과는 달리, 벤자민의 삶은 안쪽부터 향기로운 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잔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형제 여러분, 흔들리지 말고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그리고 이어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과,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로 굳세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특히 슬픔 속에 있는 알란 님과 타오 님, 그리고 라이언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비록 눈앞의 현실은 벤의 부재라는 거대한 어둠으로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합니다. 벤이 우리에게 남겨준 전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아빠와 함께 비행기를 바라보며 나누었던 대화, 가족이 함께 전 세계를 여행하며 쌓았던 아름다운 기억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아껴주었던 그 모든 시간들이 바로 벤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고귀한 사랑의 전통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기억을 굳게 지키며, 서로를 격려하고 굳세게 살아가야 합니다.
특히 동생 라이언을 생각합니다. 형 벤은 라이언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롤모델이었으며,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라이언, 형은 이제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에서 너를 가장 크게 응원하는 수호천사가 되었단다. 네가 형의 몫까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나, 엄마 아빠의 든든한 아들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형이 하늘에서 가장 바라는 일일 거야. 네가 공부할 때나 운동할 때, 혹은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눈을 감고 형을 불러보렴. 형은 언제나 네 마음속 잔 안쪽에 따뜻한 평화로 함께 머물며 너를 지켜줄 거란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고 이 기도를 함께 바치고 계신 모든 분.
우리는 오늘 주님의 제단 앞에서 우리 자신의 마음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잔 안쪽은 지금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혹시 세상의 걱정과 불안, 미움이나 원망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슬픔에 겨워 하느님의 자비를 불신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그 잔의 안쪽을 깨끗이 비우고, 그곳을 하느님의 자비와 평화로 채우라고 초대하십니다. 벤자민 보가 남겨준 그 맑은 사랑의 샘물로 우리 마음의 잔을 채웁시다. 벤은 이제 고통 없는 하늘 나라의 잔치, 그 ‘천상의 잔치’에서 성 칼로 아쿠티스와 함께 가장 맑은 생명의 물을 마시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벤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더 이상 숨 가빠하지 않으며, 그토록 좋아하던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작은 자비를 베풀 때, 벤이 남긴 사랑의 샘물은 우리를 통해 이 세상에 계속해서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벤의 이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입니다.
오늘 성당 문을 나서며, 우리가 가슴에 품고 갈 한 가지 작은 다짐을 나눕시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 물을 마시기 위해 컵을 씻을 때, 그 컵의 안쪽을 정성스레 닦으며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제 마음의 안쪽을 주님의 자비와 평화로 깨끗이 씻어주소서. 벤자민이 보여주었던 그 맑고 순수한 사랑을 제 안에도 채워주소서.”
그리고 곁에 있는 가족의 손을 한 번 더 꼭 잡아주며, 따뜻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십시오. 그 작은 몸짓 하나가 바로 우리 마음의 잔을 깨끗이 하고, 그 안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영원한 빛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을 벤자민 보,
벤, 네가 아빠의 꿈속에서 기꺼이 아이스크림 값을 계산하며 보여주었던 그 따뜻한 마음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거란다. 이제는 하느님 아버지의 품 안에서 가장 자유롭고 평화롭게 머물며, 슬픔에 잠긴 아빠 엄마와 동생 라이언에게 하늘 나라의 참된 위로를 전해주렴.
우리가 언젠가 그 천상의 잔치에서 다시 만나 함께 잔을 높이 들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늘 기도해다오.
주님의 평화가 벤자민 보와 그의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오늘 함께 기도하는 우리 모두와 항상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 슬픔 속에 있는 이 가족을 따뜻이 품어주시고, 오늘 이 기도를 바친 모든 이에게 주님의 자비와 평화를 가득히 내려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