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께서 전해주시는 참된 평화와 위로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과 멀리서 함께 기도하시는 모든 분께 가득하기를 빕니다.
주님, 저희의 지친 마음과 마른 눈물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깊은 고통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소서. 주님, 저희에게 당신 성령의 지혜와 참된 안식을 주소서.
어두워지는 해 질 녘, 방 안에서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한 아이의 모습을 가만히 그려봅니다.
창밖으로 나뭇잎이 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버지는 낮고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아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아이의 눈동자는 반짝이고, 숨소리는 고요합니다. 그 순간, 그 작은 방 안에는 세상의 그 어떤 소음도 침범할 수 없는 깊은 평화와 신뢰가 흐릅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거창한 선언을 하지 않아도, 아빠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아이의 온 마음이 채워지는 순간입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지식이나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아빠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담긴 따뜻한 체온과 사랑이었습니다. 그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때 아이의 마음속에 있던 온갖 궁금증과 작은 불안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깊은 평안만이 남았습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신비, 곧 성령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일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영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일도 하느님의 영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오늘 루카 복음에서 카파르나움 사람들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크게 놀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이기에,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언짢은 영들에게 명령하자 나가버리는가?”
오늘 저는 이 ‘말씀의 권위’와 ‘사람 속에 있는 깊은 영’, 그리고 그 영을 안아주시는 ‘하느님의 성령’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묵상의 중심에는, 아빠의 이야기 듣기를 그토록 좋아했고 깊고 다정한 영혼을 지녔던 우리 벤, 벤자민 보(Benjamin Vo)가 있습니다.
…
먼저, 우리는 이 거룩한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 마음속에 무겁게 앙금처럼 남아 있는 슬픔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벤자민이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떠난 지 어느덧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6월 13일, 그 믿을 수 없었던 이별의 날로부터 오늘까지… 세상은 계절을 바꾸며 무심히 흘러가고 있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에 묻은 아빠 알란 님과 엄마 타오 님,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친했던 형을 잃은 라이언의 마음속 시간은 여전히 그날의 어둠 속에 멈추어 서 있는 듯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은 이 찢어지는 상실의 아픔이 아물기에는 너무나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오히려 처음의 거대한 충격이 지나간 자리에, 벤의 빈자리가 더 선명하고 뚜렷하게 각인되는 시기입니다. 벤이 평소에 앉아 아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거실의 소파, 아이가 비행기와 세상을 탐구하던 컴퓨터 앞의 빈 의자, 밤이 되면 어김없이 정적만이 흐르는 아이의 방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올 때마다 부모님의 마음에는 파도처럼 슬픔이 밀려옵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솟아오르는 아픈 물음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었을까?” “왜 그 다정하고 똑똑한 아이가 이토록 일찍 우리 곁을 떠나야만 했는가?”
사랑하는 알란 님과 타오 님, 오늘 저는 주님의 성전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그 깊은 탄식과 아픔을 함께 안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이별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로서 정성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무언가를 놓쳐서 발생한 일도 아닙니다. 이 지상의 삶에는 인간의 미미한 지혜나 의지로는 다 설명할 수도, 막아낼 수도 없는 무작위의 슬픔과 자연의 섭리가 존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에게 벌을 내리시거나 슬픔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시고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그 부모의 죄도 아니다”(요한 9,3)라고 말씀하셨듯이, 이 가혹한 이별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아프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당신의 병에 모으시며, 여러분의 곁에서 가장 아픈 눈물로 함께 울고 계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은 벤에게 사람이 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온전한 사랑을 바쳤습니다. 벤은 그 사랑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счастли하고 깊이 존중받는 아들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내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픈 자책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사랑은 하느님 앞에서 이미 온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
이제 이 아픈 가슴 위에 오늘 들려오는 복음의 빛을 가만히 비추어 봅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 회당에 들어가시어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회당 안에는 더러운 마귀의 영에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아! 나자렛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망치려 오셨습니까?”
그 소리는 혼란의 소리였고, 내면의 깊은 어둠과 두려움이 질러대는 비명이었습니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그 거친 소리에 놀라고 불안해했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때로 이런 어둡고 거친 소음들이 찾아옵니다. 슬픔과 절망, 자책과 원망의 소리들이 우리 영혼을 흔들고 어지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거친 소음에 휘둘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긴 논쟁을 하지 않으십니다. 복잡한 이론을 내세우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은 오직 권위 있는 한마디로 꾸짖으십니다.
“조용히 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그러자 마귀는 그 사람을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던져 두고는, 전혀 해치지 못하고 나갑니다.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던져졌지만, 그 사람은 ‘전혀 해를 입지 않았다’고 복음은 증언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말씀의 권위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우리 영혼을 괴롭히던 거친 소음과 어둠은 침묵하고, 오직 주님의 평화만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파괴하는 힘이 아니라, 마귀의 내던짐 속에서도 우리를 ‘전혀 해치지 못하게’ 보호하시는 구원의 힘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 주님의 마음, 성령의 지혜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꺼이 주신 선물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지혜나 논리, 사람의 말로는 이 가혹한 이별과 슬픔의 신비를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그저 “안됐다”, “상심이 크겠다” 하는 표면적인 위로만을 건넬 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성령은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 곧 ‘사람 속에 있는 영’의 아픔까지 헤아리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그 깊은 상처를 가만히 덮어주십니다.
…
우리 벤자민 보, 우리 벤은 참으로 비범하고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소년이었습니다. 수학적 논리와 현대 기술의 첨단을 자유롭게 탐구하던 영특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벤의 진짜 아름다움은 그 명석한 두뇌 뒤에 숨겨져 있던 ‘깊고 다정한 영혼’에 있었습니다.
벤은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던 아이였습니다.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아이는 옆에 가만히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벤에게는 아빠의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이 아빠의 영과 자신의 영이 만나는 거룩한 시간이었고, 온전한 신뢰와 사랑을 확인하는 안식의 순간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사람의 일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영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벤은 겉으로 드러나는 수식이나 코드보다 더 깊은, 그 영혼의 세계를 느낄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벤이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었던 그 맑고 해맑은 미소, 그 수줍은 웃음소리는 바로 하느님께서 그 아이의 영혼 안에 심어주신 순수한 평화의 열매였습니다.
벤은 이제 이 지상의 아빠가 들려주던 이야기의 시간을 넘어, 천상에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사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곳은 더 이상 아무런 어둠도 없고, 어떠한 마귀의 혼란도 침범할 수 없으며, 오직 주님의 권위 있는 평화만이 가득한 영원한 잔치 제단입니다. 벤은 그 천상의 자리에서 성 칼로 아쿠티스와 함께 머물며, 하느님의 성령 안에서 여러분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알란 님, 타오 님. 벤이 아빠의 이야기 소리에 마음을 놓고 안식했던 것처럼, 이제는 여러분이 주님의 권위 있는 목소리에 마음을 맡기실 차례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지친 영혼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내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다. 슬픔과 자책의 소음아, 이 가정에서 나가라.”
동생 라이언에게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라이언, 형 벤은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스승이자 가장 따뜻한 형이었지. 형이 아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지었던 그 온화한 미소와 마음 깊은 신뢰는 이제 네 마음속에 소중한 보물로 담겨 있단다. 라이언이 씩씩하게 잘 지내고, 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아드리는 다정한 아들이 되는 것, 그것이 형이 하늘 나라에서 너를 바라보며 가장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할 일이란다. 형은 언제나 네 곁에서 너를 지켜주는 수호천사로 함께하고 있단다.
그리고 오늘 멀리서 온라인으로 함께 기도하고 계신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특히 예치 않은 이별로 자녀를 가슴에 묻고 밤마다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부모님들과, 몸과 마음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고통받는 모든 가정에 하느님의 깊은 평화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숨은 눈물을 아시며, 당신 성령의 온기로 여러분을 꼭 안아주고 계십니다.
…
오늘 강론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가 가슴에 품고 실천할 수 있는 작고 구체적인 일 하나를 제안합니다.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시면 TV나 휴대폰, 모든 세상의 소음을 잠시 꺼보십시오. 그리고 온 가족이 거실이나 방 안의 전등을 낮추고, 1분 동안 가만히 침묵 속에 머물러 보십시오.
그 고요함 속에서, 벤자민이 아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듯, 여러분도 주님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속으로 주님이 들려주시는 권위 있는 위로의 목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얘야,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키고 있다. 벤은 내 품 안에서 완전한 평화를 누리고 있단다.”
그 침묵 끝에 곁에 있는 가족의 손을 가만히 잡고 온기를 나누어 주십시오. “사랑한다, 고맙다” 하는 다정한 한마디를 나누십시오. 그 소박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바로 오늘 복음이 말하는, 마귀의 소란을 몰아내고 우리 가정을 지켜주는 주님의 권위 있는 평화입니다.
사랑하는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짓던 그 눈부시게 맑은 미소와 깊은 영혼의 결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너의 그 순수한 영혼은 이제 하느님의 성령 안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고 있단다. 이제는 고통도 슬픔도 없는 천상의 아버지 집에서, 네가 좋아하는 영원한 진리의 이야기를 마음껏 들으며 평화로이 쉬려무나.
우리가 언젠가 하느님의 거룩한 나라에서 다시 만나 기쁨의 포옹을 나눌 그날까지, 슬픔 속에 있는 아빠 알란 님과 엄마 타오 님, 그리고 동생 라이언을 위해 늘 하느님께 기도해다오.
권위 있는 말씀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고, 우리의 깊은 영을 당신 성령으로 안아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시어 여러분을 지켜주시고, 주님의 평화가 알란 님과 타오 님, 라이언, 그리고 이 기도에 함께하는 모든 이의 마음에 항상 머물기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