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주님의 은총을 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첫 번째 서간과 루카 복음 말씀을 함께 듣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가서 하느님의 신비를 전할 때, 뛰어난 말이나 지혜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나는 약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갔습니다. 내 말과 내 선포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이 아니라, 영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 들어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성장하신 고향 나자렛에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펼쳐 당신의 사명을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의 영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잡힌 이들에게는 해방을, 눈먼 이들에게는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며,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하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힘’과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묵상의 중심에는,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벤자민 보(Benjamin Vo)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알란 님과 타오 님, 그리고 라이언.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 그리고 멀리서 이 미사에 함께하고 계신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갈 때, ‘뛰어난 말이나 지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약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갔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이것은 복음 선포자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나약해 보입니다. 힘이 넘치고, 지혜롭고, 당당한 모습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고의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바로 그 ‘약함’과 ‘떨림’ 속에서 하느님의 힘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이 아니라, ‘영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람의 지혜로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의 성공과 명예,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추구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하며, 삶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생각과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약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들’을 통해 당신의 가장 위대한 힘을 드러내십니다.
벤자민, 우리 벤을 기억해 봅시다. 벤은 참으로 비범한 아이였습니다. 그의 지성은 놀라웠습니다. 4학년 때 이미 8학년 수학 문제를 풀고, 14살에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인프라를 탐구하며, 아빠가 사용하는 AWS 환경까지 익혔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께서도 벤을 보며 ‘자신의 복사판’이라고 느낄 만큼, 논리와 기술에 대한 그의 이해력은 또래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얼마나 깊이 몰두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GitHub 저장소에는 그가 직접 코딩한 게임과 응용 프로그램들이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벤이 ‘Con Chim Airlines’라는 항공사를 만들고 싶어 했다는 꿈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벤이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얼마나 해맑게 웃고 즐거워했는지,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벤의 삶은 그 짧은 15년 동안, 세상의 지혜와 가능성을 탐구하는 빛나는 지성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하느님의 힘’은 단순히 뛰어난 지성이나 기술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힘’은 벤의 ‘마음’에서, 그의 ‘순수함’에서, 그의 ‘사랑’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벤이 12살 때, 아버지의 40번째 생일날 아빠를 잃을까 봐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깊이 울립니다. 그것은 단순한 어린아이의 감성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깊은 연민과, 그 존재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끼는 성숙한 영혼의 표현이었습니다. 벤이 뇌졸중으로 고통받던 윌리엄 삼촌을 위해 자신의 저금통을 내놓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돈을 기부하겠다는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고 싶을 만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기는 숭고한 자비심의 발현이었습니다. 비록 그 제안이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의 제안’ 자체가 벤의 영혼이 얼마나 순수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세상의 지혜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그 힘. 벤의 삶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진정한 힘은 우리의 지식이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주신 사랑과 연민, 그리고 자비심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에서 선포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 순간,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묻습니다. 익숙함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당신의 고향에서도 카파르나움에서 하신 일과 같은 기적을 행하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가 자신의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진실을 말씀하시며, 엘리야와 엘리사 예언자의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향할 수 있음을 암시하십니다. 그러자 회당 사람들은 분노하여 예수님을 내쫓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이루어짐’은 환영과 찬사가 아니라, 분노와 배척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힘이 드러나는 방식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고, 우리의 편견을 깨뜨리며,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 삶에 개입하십니다. 때로는 그것이 우리의 익숙함과 편안함을 흔들고, 때로는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 안에는 우리를 낡은 굴레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영과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알란 님과 타오 님. 벤에게 찾아왔던 아픔과 이별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로서의 사랑이 부족해서도, 무언가를 놓쳐서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지혜나 노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무작위의 슬픔과 자연의 섭리가 존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에게 벌을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당신의 병에 모으시며, 여러분의 곁에서 함께 울고 계십니다. 벤은 여러분이 준 사랑 안에서 가장 행복하고 존중받는 아들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내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픈 자책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사랑은 하느님 앞에서 완벽했습니다. 벤은 그 사랑 안에서 이미 하느님의 힘과 은총을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벤자민은 ‘Con Chim Airlines’를 꿈꾸며 하늘을 동경했습니다. 그는 비행기를 좋아했고, 하늘을 나는 자유로움을 사랑했습니다. 오늘 그는 하느님의 품으로 날아올라, 그 어떤 제약도 없는 영원한 하늘에서 가장 자유롭게 날고 있습니다. 벤이 아빠의 꿈에 나타나 “괜찮아요. 이제 천국에서 영원히 살 거예요”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던 것처럼, 그는 이미 하느님의 평화와 기쁨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힘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지혜나 권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이며, 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는 벤자민의 삶을 통해, 그리고 사도 바오로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힘이 우리 안에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약함 속에서, 우리의 떨림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사랑 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드러납니다. 벤이 보여주었던 순수한 마음과 깊은 연민, 그리고 가족을 향한 헌신적인 사랑은 바로 하느님의 힘이 벤의 삶을 통해 세상에 전해진 아름다운 메시지였습니다.
사랑하는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우리에게 보여준 그 빛나는 지성과 따뜻한 마음, 그리고 ‘Con Chim Airlines’를 꿈꾸던 해맑은 웃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하느님의 날개를 달고 저 높은 하늘에서 가장 자유롭게 날아오르렴. 우리가 언젠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 네가 예약해둔 천상의 비행기에서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릴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해다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사람들에게 “너희는 ‘의사야, 너 자신을 먼저 고쳐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며,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는 것을 여기서도 너희 고향에서 해 보아라.’ 하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타인의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의 마음이 하느님의 말씀 앞에 열려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벤자민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둔 믿음으로 가득 차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성당 문을 나서며, 우리가 가슴에 품고 갈 한 가지 작은 실천을 제안합니다. 오늘 집에 돌아가시면, 벤자민이 좋아했던 비행기 모형이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벤이 꿈꾸었던 ‘Con Chim Airlines’처럼, 우리 삶에도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라는 날개가 돋아나,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시다. 벤자민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하느님의 힘으로 충만하여, 세상에 희망과 사랑의 향기를 전하는 아름다운 비행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벤자민 보, 우리 벤. 네가 우리에게 보여준 그 빛나는 지성과 따뜻한 마음, 그리고 ‘Con Chim Airlines’를 꿈꾸던 해맑은 웃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하느님의 날개를 달고 저 높은 하늘에서 가장 자유롭게 날아오르렴. 우리가 언젠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 네가 우리를 위해 예약해둔 천상의 비행기에서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릴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해다오.
세상의 약한 것을 통해 당신의 강함을 드러내시고, 우리의 부족함을 통해 당신의 은총을 채우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For the intentions entrusted to Ben on our prayer wall:
At the Savior’s command and formed by divine teaching, we dare to say: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 오늘 저희가 받은 말씀을 마음에 새겨, 벤자민처럼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